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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동복지 역사

몰리92 2022. 10. 26. 23:0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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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유럽의 아동복지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유럽은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가족 강화를 기본 원리로 하여 아동을 정상적인 가정환경 두어 보호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 국가가 여러 가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

    고대 처음으로 나타난 사회는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공동체 사회였습니다. 이 사회에서 아동은 종족 보존의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씨족공동체 이후 부족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부족사회 아동은 생산 수단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부족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 즉 생산 능력을 갖춘 아동만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아동은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받는 무력한 존재였으며 인격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고대사회는 자원이 부족하였으므로 영아살해나 유기는 인구와 자원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편이었습니다. 또한 아동을 사유재산으로 여겨 빈곤하거나 양육 능력이 없는 부모는 아동을 파는 등 아동의 생사여탈을 결정하였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이르러 생명을 중시하는 기독교 사상으로 인해 영아살해와 유기는 죄악시되고 금기시되었습니다.

    중세사회

    중세사회는 엄격한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한 봉건사회였습니다. 아동은 장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과 경제력 확보를 위한 수단적 존재로 보았으며 아동 자체나 아동복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중세사회 초기 수도원을 중심으로 아동 시설보호가 활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구빈원 형태의 집단 보호시설에 고아와 기아 외에 병자, 노양자, 부랑자 등을 수용 보호하였습니다. 17세기에 들어 비로소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아동 존중 사상이 대두되었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아동복지 이념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아동복지는 종교적 자선 차원을 넘지 못했으며, 아동의 존엄성이나 권리를 보장하는 본격적인 아동복지가 전개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사회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가 형성되면서 봉건제도가 붕괴하고 근대사회가 도래하였습니다. 자본가와 노등자 계층으로 나뉘어 농노들은 대거 도시로 이주하여 도시빈민으로 전략하였습니다. 1601년 제정된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과 노동 능력이 없는 빈민으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요보호아동의 규정을 포함하여 아동복지제도의 효시를 이루었습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유료 혹은 무료로 양육 의사가 있는 가정으로 위탁하였으며, 다른 가정에 도제로 보내는 등 아동노동이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구빈원과 같은 기와와 고아에 대한 시설보호가 있었지만 그 목적은 사회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고아와 장애아를 위한 다양한 시설보호가 마련되었습니다.

    현대사회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프로이트, 에릭슨 등 여러 아동발달 학자의 연구를 통해 아동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아동은 고유한 인격체를 가진 독자적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0세기 아동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아동의 욕구가 충족되고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는 체계적인 아동복지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아동복지 발달 역사를 살펴보면 집단시설 수용에서 소규모 시설보호로, 시설보호에서 재가 및 지역사회 보호로, 단순한 서비스 제공에서 다양하고 특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바뀌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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